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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바위 속에 숨겨진 나바테아인의 도시

by 포포밍 2025. 2. 28.

페트라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붉은 사암 절벽을 깎아 만든 독특한 건축물들로 유명합니다. 페트라는 기원전 4세기경 나바테아인(Nabataeans)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Silk Road)와 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여 향신료, 유향, 직물, 보석 등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페트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잃어버린 도시’라는 별칭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1. 페트라의 기원과 나바테아인의 역사

나바테아인은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에서 이주한 유목민 집단으로, 페트라 지역에 정착하면서 점차 강력한 무역 왕국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사막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능숙했으며, 특히 수로와 저수지를 이용한 독창적인 수자원 관리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 나바테아인은 페트라를 수도로 삼고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했습니다. 이들은 아라비아 반도, 인도, 중국과 교역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와 동맹을 맺고 더욱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으며, 당대의 문화와 건축 기술을 받아들여 페트라를 화려한 도시로 성장시켰습니다.

2. 페트라의 건축과 도시 구조

페트라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건축물들이 특징적이며, 도시 전체가 사암 절벽과 협곡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나바테아 인들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력을 높이고, 독창적인 건축 기술로 거대한 신전과 무덤을 조성했습니다.

1) 시크(Siq)

페트라로 들어가는 길은 시크(Siq)라고 불리는 약 1.2km 길이의 좁은 협곡입니다. 이 협곡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나바테아 인들은 일부 구간을 인공적으로 확장하여 도시로 향하는 장대한 입구를 만들었습니다. 시크의 양쪽 벽에는 나바테아 인들이 건설한 수로 흔적이 남아 있으며, 홍수를 방지하고 도시로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 카즈네(Al-Khazneh, 보물창고)

시크의 끝에 위치한 카즈네(Al-Khazneh)는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입니다. 높이 약 40m, 너비 25m에 이르는 이 건축물은 거대한 암석을 깎아 만든 장엄한 구조로,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원래 왕족의 무덤이나 신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중에는 보물창고로 사용되었다는 전설이 생겨났습니다.

3) 수도원(Ad Deir)

페트라에서 가장 큰 건축물 중 하나인 수도원(Ad Deir)은 산 정상에 위치하며, 8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높이 48m, 너비 5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카즈네보다 단순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만, 그 웅장함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수도원은 나바테아 인들의 종교의식이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로마 극장

페트라에는 로마식 원형 극장도 존재합니다. 나바테아 인들은 로마 건축 양식을 받아들여 이 극장을 건설했으며, 약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나바테아 인들이 로마 문화와 밀접한 교류를 했다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5) 왕족 무덤

페트라에는 여러 개의 왕족 무덤이 존재하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우르네 무덤(The Urn Tomb)’, ‘실크 무덤(The Silk Tomb)’, ‘코린트식 무덤(The Corinthian Tomb)’ 등이 있습니다. 이 무덤들은 거대한 사암 절벽에 새겨져 있으며, 당시 나바테아 왕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묻힌 장소로 추정됩니다.

3. 페트라의 번영과 몰락

페트라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로마와 동맹을 맺으며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이 시기에 화려한 건축물과 신전, 주거지가 대거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106년, 로마 제국이 나바테아 왕국을 병합하면서 페트라는 로마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무역 도시로 계속 번영했지만, 무역 루트가 바다로 이동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363년에는 대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었으며, 이후 점점 도시가 버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 시대에 접어들면서 페트라는 더욱 잊혔으며, 12세기 십자군이 잠시 점령한 후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는 페트라의 존재조차 잊혔습니다.

4. 페트라의 재발견과 현대 연구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가 현지인으로 위장하여 페트라를 탐사하면서, 이 도시는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탐험가들이 페트라를 연구하며, 이곳이 고대 나바테아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밝혀냈습니다.

20세기 이후 본격적인 발굴과 보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요르단 정부와 국제 연구팀이 공동으로 유적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페트라의 수로 시스템과 건축 기술을 연구하며, 나바테아 인들이 얼마나 정교한 기술을 보유했는지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5. 페트라의 현대적 의미

페트라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7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었습니다. 현재는 요르단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대규모 관광으로 인해 유적이 점점 훼손되고 있습니다. 요르단 정부와 유네스코는 유적 보존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과학 기술을 활용한 복원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결론

페트라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에서 번성한 나바테아 문명의 증거이자, 고대 무역로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로운 건축물과 정교한 수로 시스템은 나바테아 인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창의성을 보여줍니다.

현대 연구를 통해 페트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추가적인 발굴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가능성이 큽니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로 남아 있는 페트라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살아 있는 역사적 장소로 계속해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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